레슬매니아 29 감상평. (한국 방송 기준 스포일러 포함) 프로레슬링



올해 레슬매니아 29는 알베르토 델 리오와 잭 스웨거의 월드 헤비급 타이틀 경기, 언더테이커와 CM 펑크의 대결, 리플 H의 커리어가 걸린 브록 레스너와 트리플 H의 노 홀즈 바드 매치, 그리고 더 락과 존 시나의 WWE 타이틀 경기의 4대 메인이벤트를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1. 쉐이머스&랜디 오턴&빅 쇼 vs. 쉴드 (딘 앰브로스&세스 롤린스&로먼 레인즈)

지난 WWE의 페이퍼뷰인 TLC와 일리미네이션 챔버에서 펼쳤던 쉴드의 6인 태그매치에 비교하면 한참 모자랄 정도로 딱히 눈여겨 볼 것이 없었던 오프닝 경기였습니다. WWE가 모든 경기마다 공을 들이던 것도 오래전 얘기이긴 합니다만 다른 PPV도 아닌 레슬매니아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경기가 이 정도로 졸작이었다는건 좀 실망이었습니다.


2. 라이백 vs. 마크 헨리

두 파워하우스 레슬러들의 대결치고는 마무리가 너무 싱거웠던 경기였습니다. 아마도 다음 페이퍼 뷰까지 이 둘의 대립을 이어갈 생각인 걸까요? 경기 내내 관중들이 라이백 보다 헨리에게 더 많은 환호를 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 팀 헬 노 (케인&다니엘 브라이언) c. vs. 돌프 지글러&빅 E 랭스턴 (with AJ 리) /WWE 태그팀 챔피언쉽

이번 레슬매니아 29에서는 희한하게도 WWE 데뷔 매치를 레슬매니아에서 치루는 신인이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선수가 바로 여기서의 빅 E 랭스턴으로 마크 헨리처럼 파워 리프팅 선수로 활동하다 프로레슬링으로 접어든 케이스라고 하는군요. 본 경기에서 케인을 힘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경기는 마지막 지글러에게 케인의 초크 슬램에 이은 다니엘의 다이빙 헤드벗으로 팀 헬 노가 승리를 거머쥐며 태그팀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기승전결이 모두 깔끔했던 경기로 개운치않은 내용과 마무리를 보여준 이전의 두 경기들 때문에 가졌던 찝찝한 기분이 단번에 날아가는 느낌이더군요.

덧. 다니엘 브라이언의 YES 챈트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어느덧 릭 플레어의 Woo~! 만큼이나 클래시컬한 챈트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4. 판당고 vs. 크리스 제리코

이번 레슬매니아에서 데뷔 매치를 치룬 또 다른 신인 선수는 판당고입니다. 판당고는 그간 경기가 아닌 세그먼트에 그치는 모습 때문인지 관중들로부터 "You can't wrestle!" 챈트를 매주 들었었죠. 개인적으로 레슬매니아에서 첫 데뷔 매치를 가지는 선수 중 한 명 이었던 만큼 이번 레슬매니아에서 그런 야유를 잠식시킬 좋은 활약을 기대했었습니다만 시종일관 제리코가 거의 모든 경기 내용을 주도했고 판당고는 몇몇 반격장면들을 제외하곤 그닥 인상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원래 이 경기에서 보여준 기량이 전부인건지 아니면 힐 캐릭터상 일부러 제대로 된 기량을 보여주지 않았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섣부른 판단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판당고의 스포츠댄서 기믹이 그닥 오래 갈 포텐이 안보인다는 점에서 차라리 제리코가 이왕 레매에서 패배할거 그 상대가 안토니오 세자로나 웨이드 바렛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네요. 


5. 알베르토 델 리오 c. (with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vs. 잭 스웨거 (with 젭 콜터) /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지난 하반기 공백기를 거친 후 올해 초 기존의 리얼 아메리칸 별명에 국수주의 인종차별 기믹을 가미한 캐릭터로 복귀한 잭 스웨거. 대립 초기 잭 스웨거와 그의 매니저인 젭 콜터가 야후 검색어 1위에 오르내리고 폭스 뉴스의 유명 보수 정치 평론가 글렌 벡이 코멘트를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긴 했습니다만 지난 2월 스웨거가 음주운전과 대마초 흡연 사고를 일으켜 대립에 찬물을 끼얹은 바가 있었죠. 델 리오도 역시 턴페이스 후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에디 게레로와 레이 미스테리오에 이어 히스패닉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을 탑페이스로 발돋움하려 했습니다만 현재 그닥 큰 반응은 못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뭔가가 좀 아쉬운 선수들 간의 만남이라 그런지 4대 메인 이벤트 중 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제일 약했던 경기였습니다.
중간의 서브미션 공방은 눈여겨볼만 했습니다만 그 장면을 빼고는 대체로 큰 액션없이 무난하게 흘러간 시합이었습니다. 업계의 베테랑을 매니저로 붙여주고 캐릭터의 변신을 감행한 스웨거이지만 프로레슬러로서 제일 중요한 경기기량의 정체는 못속이는 걸까요? 이런 선수를 제2의 커트 앵글로 밀어주려는 JR의 선구안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6. 언더테이커 vs. CM 펑크 (with 폴 헤이먼)

언더테이커는 나이와 고질적인 부상, 펑크 역시 그동안 축적된 데미지 때문에 두 선수의 컨디션 난조가 은근히 느껴지는 경기를 예상했었습니다만 그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굉장한 명승부를 보여주었습니다. 레매 연승이라는 전제가 깔린 상황에서 큰 액션없이 피니셔로 니어폴 장면을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게 커서 그런지 언더테이커의 레매 경기는 정말 믿고 보는 흥행보증수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 WWE의 최고 워커라 일컬어지고 있는 펑크의 역할도 컸지만 1년에 한 번꼴로 경기를 가지는데도 링감각을 잃지않는 언더테이커가 참 대단하게 느껴지더군요. 
숀 마이클스 그리고 트리플 H와 치룬 지난 언더테이커의 레매 4연전이 워낙 굉장했어서 그런지 이번 해는 살짝 무게감이 덜한 느낌이었는데 언더테이커에겐 레매30을 위한 살짝쿵 쉬어가는 여정이었다고 보면 될까요? 과연 대망의 레매 30에서는 누굴 상대로 어떤 결말을 연출해낼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7. 브록 레스너 (with 폴 헤이먼) vs. 트리플 H (with 숀 마이클스)/ No Holds Barred 경기 + 만약 브록이 승리할 경우 트리플 H는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됨.

지난 섬머슬램의 리턴 매치로 펼쳐진 경기. 트리플 H의 은퇴 조항이 걸린 경기였습니다만 이미 그가 1년에 한두번 시합을 치룰까말까한 현실에서 그런 경기 조항이 경기 분위기를 북돋우는데 얼마나 메리트가 있을지 좀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의감과는 반대로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경기자체는 상당한 박진감이 흐르는 내용이었습니다.
브록이 WWE 복귀 후 치렀던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10년 전과는 다른 경기 스타일이 팬들 사이에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던 게 기억이 나는데요. 이번 경기는 기믹 매치의 영향때문인지 좀 더 프로레슬링 다웠던 것 같습니다. 각각 컴퍼니로 나왔던 헤이먼과 숀의 깨알같은 활약도 상당히 좋았구요.

경기는 로우블로와 슬렛지 해머 샷등 졸렬졸렬한 공격을 거듭한 끝에 마지막 철제 계단 위에서의 페디그리로 트리플 H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브록에겐 '브록 레스너+철제 계단=필패' 공식이라도 있는 건지 지난 시나와의 경기에서도 철제 계단 위에 AA를 맞은 후 카운트를 내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비슷하게 철제 계단 위에서 페디그리를 맞으며 패배하게 되었네요.  브록이 내년 레매 30에서 더 락, 또는 언더테이커와 경기를 벌일 것이란 루머가 있는데 그때까지 브록의 강력함은 유지하겠다는 걸까요? 아무튼 브록 역시 앞으로의 귀추가 계속해서 주목됩니다.


8. 더 락 c. vs. 존 시나 /WWE 챔피언 쉽

WWE의 세대를 잇는 아이콘 대 아이콘 대결이라는 점에서 과연 장장 3년에 걸친 이 둘의 대립이 과거 더 락과 헐크 호건의 대립에 비해 견줄만한 건덕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대립 덕에 WWE는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만 그거야 기업입장이고 팬입장에서는 대립내내 개인적으로 참 보기가 개운치가 않았는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밸붕. 이미 경기기량 자체는 많이 죽은 더 락이지만 세그먼트와 호응도 면에서 시나보다 우위였던게 내내 드러났던 대립이었습니다.

경기에 대해선 작년와 같은 감상인데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는겁니다. 경기 후반으로 들어갈수록 지난 러에서의 시나 대 펑크전 양상과 비슷한 피니셔 공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만 단지 그뿐 장면을 연출할 경우의 수가 적어서 그런지 놀랍기는 커녕 되려 너무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시나의 경우 상대와의 상성이 어떤지에 따라 경기내용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선수이고 락같은 경우 이미 40대에 접어든 나이에 프로레슬러로서의 9년의 공백을 쉽게 못벗어나는 모양새여서 명경기를 기대하기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두 선수 모두 그러한 한계에서 최선을 다한 경기라고 생각됩니다. 

어찌되었건 굴러들어온 락이 짱박혀있던 시나에게 갑자기 생겨난 바톤을 넘겨주며 서로 거수경례를 나누는...복잡한 감정과 함께 본격 한국남자 군부심 부리고 싶어지는 결말로 레슬매니아 29는 막을 내렸습니다.



경기 호감도순 : 1=2→4→5→3→8→6→7

총평 : 화려한 경기장과 폭죽쇼 구경에 '덤으로' 프로레슬링까지 본 기분...

덧글

  • orixx 2013/04/11 20:01 # 삭제 답글

    제리코 vs 미즈 vs 바렛,제리코 vs 세자로 이 좋은 매치업을 레매가 아닌 일반 러 위클리쇼에 써먹었죠
    판당고는 빈스가 맘에 들어해서 밀어주는 선수라는데 참 한숨밖에 안나옵니다
  • hayabusa 2013/04/12 06:25 #

    확실히 말하신 위의 두 매치업들도 레매에서 충분히 통할 매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느낀거지만 WWE는 인디 단체에서 유명세를 떨치다 온 선수에게는 오랜 기간 시련 아닌 시련(?)을, 그리고 자기네 산하단체에서부터 키워왔던 순혈 선수들에게는 비교적 굉장히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죠. 이번 판당고와 랭스턴의 레매 데뷔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되는데 빈스를 비롯한 WWE 수뇌진들의 기대를 몸에 받고 있는 이 두 선수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런지 좋든 싫든 한번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 지에스티 2013/04/13 20:36 # 답글

    오 트리플 H 대 브록 레스너는 재밌게 보셨군요! 글 잘 봤습니당! 그나저나 잭 스웨거 대 알베르토 델 리오가 진정 4대 메인 이벤트 중 하나였던가요?!;;
  • hayabusa 2013/04/13 22:16 #

    철저히 트리플 H가 당하던 형세여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덥덥이의 양대 정상급 타이틀 중 하나인 월드 챔피언쉽으로서 4대 메인 중 한경기로 광고하긴 했지만 너무 무게감이 떨어지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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